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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김해공예품대전 출품('17. 04. 04) by 마루치

제목 : [태조대왕 칠피 어궁구 일습]
입선 수상







600년전 태조 어궁구를 오늘에 되살리다 by 마루치


  

우리활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2004,

국방일보에서 연재했던 칼럼 [한국의 군사문화재 순례]태조 어궁구(御弓具)’편이 있었고 활, 화살, 궁대, 동개를 촬영한 조그만 작은 흑백 사진 하나가 첨부되어 있었다.
특이하게 생긴 활고자의 형상과 함께 복잡한 문양의 활집, 기다란 통형의 화살집에서 생경함을 느꼈었다.

 

저해상도의 화질을 통해 보여지는 하얀 쪽지에 각궁[角弓], 동개[筒箇], 현구[弦具], 궁대[弓袋], 장전[長箭]이라고 적혀있었다.

 

 

같은 해, 속초의 세계기사연맹(WHAF)에서 시행한 제1회 국제기사대회 출전을 위하여 동개 제작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 첩개라고 불리던 조선후기형 투피스의 동개 시복과 박쥐문양의 자수 궁대까지 제작을 하기에 이르렀고, [경남공예품대전]에 선을 보여 첫출품 임에도 장려상까지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었다.

 

이후에도 끊임없는 연구와 시도로 여러 형태의 활집 화살집을 만들어 보았다.

하지만, 저해상도 사진속의 궁대와 동개가 국조오례의의 그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과, 후대에 활집과 화살집을 총칭하는 동개라는 명칭이 바로 이 통형의 화살집에서 유래하였음을 확신할 뿐 제작 기법을 가늠할 수 없어 늘 마음의 숙제로 남겨져 있었다.

 

반면, 칼모양의 독특한 고자형상을 가진 활은 약 4년전부터 태극궁 조영석 명궁님과 협업으로 개발하였고, OEM 방식으로 프레임을 납품받아 단장을 거쳐 [칼고자 마루활]이라는 브랜드로 공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금 폭 4cm 전후의 실제 유물과 같은 군용활의 제작은 소재의 수급에서부터 어려움이 있어 오랫동안 염원만 해 오던 터었다.

 

 

<어궁대 어동개 되살리기>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진주박물관 이효종 학예사와 활 유물에 대하여 통화 하던중 왜정 때 총독부박물관에서 찍어 놓았던 고화질의 유물 사진이 해방과 함께 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되었고, 최근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 태조 어궁구의 또다른 사진이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곧바로 중앙박물관에 의뢰하여 사진 이미지를 입수하게 되었고, 복원제작을 위한 좀 더 구체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고해상도 이미지를 통해서 본 활집은 멧돼지 가죽바탕에 연화당초문양을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성형 하였음을 알 수 있었고, 화살통의 장석 형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궁대의 제작 기법은 현대에 유행하는 가죽공예 기법인 카빙과는 다른 기법이었다.

카빙 기법은 가죽 표면을 카빙 나이프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문양을 그리듯 찢은 후 그 주변을 다양한 공구를 이용하여 내려 앉게 함으로서 상대적으로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기법인데, 어궁대의 문양은 선과 면 자체를 튀어나오도록 성형을 하였다.

서각공예처럼 평평한 나무판에 쓴 글씨의 여백을 깍아내어 글자가 돌출되어 보이도록 하는 돋을새김/섭새김과도 다르며, 형태로 눌러서 모양을 내는 엠보싱과도 다르다.

굳이 이름짓자면 성형 기법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이와같은 가죽공예 유물을 국내외 어느곳에서도 아직까지는 본 바가 없는 것이었다.

 

동개 화살집은 소가죽을 물성형 기법을 이용, 통 형태로 제작하였고 옻칠을 하였다.

궁대 역시 옻칠을 하였을 것이니, 내가 아는 가장 오래된 칠피漆皮 공예 유물들이다.

 

 

멧돼지 가죽은 추후 연천의 목궁 명인 현중순님에게 의뢰하여 구하기로하고, 우선 공예용 소가죽을 주재료서 사용하고 장석은 황동판과 봉을 잘라 두드리고 땜하여 만들었다.

그동안 Youtube등을 통해 공부한 국내외 공예가들의 기법/정보와 나만의 아이디어를 적절히 가미, 몇 차례의 습작을 거쳐 완성품을 얻을 수 있었다.

 

 

 

 

복제품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니, 가죽의 염색을 조금씩 달리하여 옻칠로 마무리하고, 황동 장석 역시 옻칠하여 굽기도 하는등 느낌이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 보았다.

 


  

철촉을 장착한 실전용 어장전은 광양의 백두화살 김연오님에게 의뢰하여 제작하였다.

유물을 통한 꾸준한 연구와 노력으로 다양한 형태의 화살을 만들고 있었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지만 검독수리의 꼬리 깃을 구할길이 없어 꿩깃을 길게 사용하였다.

 

 

<개량궁 뼈대로 어각궁 되살리기>

 

낡은 어각궁을 측면 이미지 만으로 재료와 단장 방법을 유추하기는 어렵지만, 칼날 모양 고자의 형상만은 뚜렷이 확인이 가능하였다.

 

 

고자의 양식이 프랑스 크레삐 활박물관 향각후궁의 그것과 동일하며,

임진왜란의 격전지 였던 동래읍성 해자 출토 유물등의 고자와 같은 계열의 칼고자(필자 임의명명) 형태를 띠고 있다.

칼고자 활은 고려시대를 잇는 우리 전통 군용활의 원형으로서, 적어도 200년이 지난 임진왜란때까지도 이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시기부터 윤동신활의 고자와 같이 턱진 고자(턱고자-필자 임의명명)로 변형되었는지는 추측만 할 뿐 아직은 더 연구가 필요하다.

 

칼고자 형상의 구현은 다년간의 마루활제작 경험으로 문제가 없었다.

4cm 전후의 활오금에 대한 정보 역시 사진자료와 출토보고서등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실물을 본 바 없이 되살린다는게 좀 마음에 걸렸었다.

하여, 폭은 조금 좁지만 조선후기 군용활의 외형을 간직하고 있는 육군박물관 소장 윤동신 각궁을 부관장 김성혜님의 협조로 실견하였다.

다음으로 부산박물관에 연락하여 출토보고서 도면으로만 보던 동래읍성 해자 발굴 궁간목[弓幹木]을 실견하였다.

실견의 결과, 폭 넓은 오금을 가진 활의 입체적인 느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막상 군용활에 대한 연구가 완료되었지만, 제작 착수에 가장 큰 걸림돌은 자금 문제였다.

다행히 국내외 몇몇 활 애호가의 선불구매, 즉 펀딩 후원 방식의 협조로 개발/재료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김해에서 담양 태극궁 공장까지 석달동안 세 번을 방문하였다.

 

태극궁의 조영석 명궁님은 대대로 활을 쏘아 온 집안 출신으로, 온깍지라는 명칭과 학무형 사법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우리 활쏘기에 대한 열정은 물론이고, 미술대학을 나오신 분의 심미안으로 각궁에 최대로 근접한 외형과 성능의 개량궁 보급에 오랫동안 힘을 써 온 터라 필자의 까다로운 주문에도 잘 응해 주셨다.

 

세부적인 협의와 테스트 제작 및 수정 작업끝에 드디어 뼈대 제작을 완성하였고 제대로 된 군용활의 모양을 잡는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완성된 뼈대위에, 코르크를 부착하여 각궁 몸통 소심의 도톰한 형상을 대체하는 동시에 발시 충격에서 올 있는 진동를 흡수하도록 하였다.

역시 복제품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니, 원형의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되 왕의 활이었음을 감안해 조금 고급스럽게 치장해 보기로 하였다.

 

 

양가죽으로 감싼 줌의 위아래 아귀피는 출전피를 겸할 수 있도록 큰 가오리 가죽을 사용하였고, 양냥고자의 서피는 작은 가오리 가죽을 사용하였다.

무력전은 양털을 이용해 직접 만든 삼색 모전을 사용하고,

무력심은 소 심줄을 사용 고자 둘레를 두세바퀴 감주었고,

끈 재료로는 삼마끈을 사용하였고,

부레풀 중 가장 접착력이 우수하다는 참조기의 부레를 중탕해 만든 어교를 일부 시험삼아 사용해 보았고,

도고자는 두꺼운 소가죽을 잘라 만들고, 그위에 면벗 없이 옻칠하여 제작하였다.

당시엔 화피보다는 옻칠을 주로 애용하였음을 알지만, 사진상으로는 확인 할 길이 없어 자작나무 화피를 씌우고 옻칠을 적절히 적용하였다.

뿔앞면의 카본은 사포로 적당히 긁어주어 마치 흑각의 느낌이 나도록 하였다.

 

 

자두꽃과 표범문양도 시험삼아 그려넣어 보았다.

 

 

시위줄 현은 예총의 궁현/깍지 부문 명인 이며 국궁과학연구소 소장이신 밀양의 성주영님에게 부탁하여 맞춤제작하였다.

 

조선의 근본법전 [경국대전]의 최종본인 [대전회통]의 공장工匠 제도중 활쏘기와 관련된 장인의 등록 인원수 기록을 보면,

전국에 궁인 344명 시인500명 궁현장 71명 동개장 2명이 있었음을 알 수있다.

성주영 선생님은 궁현은 물론, 다양한 형태의 개량 깍지를 개발 공급중이다.

추화정 사두로 계시던 2003년 필자의 국궁입문 스승이기도 하다. 항상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세로 우리활쏘기에 임하라는 가르침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완성된 활은 표준궁 정도의 크기에 해당하는 크기로 양 끝단 길이는 134cm, 얹은상태 끝단 직선길이는 121cm

오금폭은 3.7cm ~3.9cm로 완성하였다.


[국조오례의] 병기도설 弓편을 보면, 상중하 6척6촌/6척3촌/6척의 활길이를 적고 있는데, 이는 부린활의 둘레 길이로서 주척으로 환산하면 약137cm  131cm 127cm 이다.

[조선의궁술]에선 부린활 길이를 약 127~129cm, 얹은활 길이를 약 106~109cm로 적고있다.


명칭은 기존에 만들던 폭 좁은 활과 구별하기 위해 너른 마루활이라고 정하였다.

 

    

현대 개량궁 및 각궁 한오금을 같이 놓고 비교해 보았다.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리하여 오랫동안,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어궁구 일습을 되살릴 수 있었다.

     

 

<또 다시 화살을 매기다>

 

영화든 사극이든 해괴망측한 국적불문의 활과 등짐지기식 동개가 판을 치고 있고, 심지어 공영방송이라는 곳에서 만든 활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조차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전통 활이나 동개에 대한 영화감독, 방송PD들의 몰상식과 무책임에서 기인한 것이며, 국궁인들 조차 우리활과 동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주 요인일 것이다.

 

오래전 사라진 옛것을 되살리는 일이 쉽지 않으며 돈되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연구하고 부활을 추구하는 이유는,

우리가 활의 민족이라고 자부만 할뿐 우리활에 대하여 올바로 알지 못하는 대중과 국궁계에서 몰랐던 정보를 공유하고 활쏘기의 다양성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 어딘가에는 꼭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600년 거리의 표적은 관중하였으니, 다음 화살은 1500년 거리의 삼국시대 유물로 겨냥해 본다.

 

 

  

<도와주신 분들>

-태극궁 대표 명궁 조영석님

-국궁과학연구소 궁현/깍지 명인 성주영님

-백두화살 시장 김연오님

-진주박물관 학예사 이효종님

-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정지은님

-육군박물관 부관장 김성혜님

-부산박물관 학예사 이성훈님

-독일,캐나다,미국,대만등지의 구매 펀딩 후원 FaceBook친구들

그리고 늘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시는 국궁인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동아대 석당박물관의 국보급 동개 by 마루치

화혜장 안해표 선생님을 뵈러 갔다가 존재를 알게 된 동아대학교 석당 박물관의 동개들이다.

두 셋트의 동개와, 멧돼지 가죽으로 판단되는 시복 하나.





멧돼지 가죽으로 보이고, 장석은 쇠로 만들었고, 조이질을 한듯한데 부식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

편전 통아용 보조부분이 떨어져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의전용 초소형 시복, 미주리대학교에 있는 그레이슨 박사 컬렉션의 그 동개시복과 같이 만들어 진 동개시복이다.

옻칠한 소가죽 바탕에, 비철금속에 옻칠하여 굽는 금태칠기 기법과 ,파도문양은 조이질과 함께 금부 기법등으로 치장하였다.


동개궁대, 해군사관학교의 그것과 동일하되 금단장만이 다르다.
같은곳에서 같은 시대에 만들었으되 고급협으로 만들었다는 차이로 생각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있는 것과 같은 동개인데, 상태가 상당히 양호하다.
조각을 한건지 타출(채이싱) 기법을 적용한것인지 그 분야 전문가의 실견이 필요하지만 대단히 아름다운 장석이 국보급이다.
장석의 재료가 금인지 황동인지도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내부를 자세히 관찰하였더니 놀라운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리 혹은 밀의 줄기로 보이는 것들이 보였다.
소나무잎을 쓴 청나라 시복과 달리 우리네 실전용 화살집엔 스트로우 형태의 보리/밀 줄기를 완충제로 사용한듯하다.

46cm 남짓, 생각 보다 크지 않다.

띠돈이 생각보다 작다.

석류를 형상화 한듯하다.

 
최근에 만들어 본 태조이성계 궁대와 각각 비교해 보니 차이가 많이 난다.
조선 후기의 동개 궁대는 경량화의 산물이다.

시복 역시 내가 만든 것과 비교해 보았다.


유물 실견에 협조해주신 담당 학예사와 박물관장님에게 국보신청을 건의했고, 추진의 의사를 확인하였다.

활을 최고의 무기로 숭상하던 나라에거 활관련 국보하나 없다는게 늘 아쉬웠는데,
금번 화려한 동개 유물의 발견을 통해 대한민국 국보지정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육사박물관 두번째 방문('16. 12. 07) by 마루치

오랫동안 고대하던 윤동신공의 각궁을 보러 갔다.
부정주차한 차 때문에 예약했던 새벽발 KTX를 놓쳐 새마을 호를 타고가는 해프닝이 있었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였지만, 김기훈 교수님을 만나 화랑정도 들러보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수 있었고
김성혜 부관장님의 배려 덕분에 나비문 동개일습과 활장갑 및 가죽깍지, 호미각궁과 특이한 궁현의 각궁을 볼 수 있었다.


칼고자 마루활과 고자 부분을 비교해 보았다.

사슴가죽일듯한 부드러운 가죽으로 감쌋다.  

두꺼운 가죽으로 보이는 동고자가 특이하다.



 







제3회 흑의장군배 실전활쏘기 대회(연천 전곡선사박물관 161106) by 마루치














연세대학교 소장 (傳稱)목궁은 육량전을 쏘던 활이었다? by 마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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