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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완대-고풍스럽고 화려한 우리 전통활쏘기 소품 by 마루치

- 조선 한량들의 필수품 -


강희언의 [사인사예], 김홍도의 [사궁], 신윤복의 [계변가화], 김준근의 [활공부하고] 그림속에 등장하는 한량들을 잘 보면, 활을 든 손의 팔뚝에 하나같이 무엇인가를 차고 있다.


바로 습(拾)이라고 하는 완대이다.

완대 습(拾)은 활을 잡은 손의 넓은 소매 자락을 현이 치는 일이 없도록 여며 주는 기능을 한다.

조선 세조의 명에 의해 1474년 성종때 출간된 [국조오례의]의 군례 중 사기射器도설에서 확인 할 수 있는데, 중국 명대(1609)에 출간된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삼재도회(三才圖會)]의 그것과 거의 같다.

(국조오례의 설명문에는 오른팔 우비右臂라고 적고 있지만 왼팔 左臂의 오기이며, 활잡은 손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하다)

1743년 영조때 거행된 [대사례大射禮의궤]에서는 더욱더 발전된 형태의 완대를 볼 수 있다.


서양 활쏘기에서도 완대와 비슷한 형태의 도구인 암가드를 사용하고 있다.
줌통을 감아쥐지 않는 사법을 사용하는 서양의 양궁활은 현이 팔뚝을 때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로인한 통증을 줄이기 위한 도구가 말그대로 팔뚝 보호대 암가드이다.

팔뚝을 때릴 일이 없는 우리네 사법은 암가드라는 도구가 필요치 않다.
넓은 옷깃만 여며주면 될 일이니 암가드와는 태생부터 다르다.

또한 1929년 출간된 [조선의궁술]에 나오는 팔찌 구(韝)와도 다르다


긴 끈의 형태를 가진 팔찌는 만들기 쉽고 착용하기가 쉬워 [조선의궁술] 집필 당시 두루 사용된 듯하다.
[조선의궁술] 중 설명문에는 팔찌 구(韝)는 ‘군복용’의 그것과 다르며 넓적하고 고리와 끈이 있어 패용하기 불편하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완대(습)의 그림은 커녕, 군복용과 일반용으로 구분할 수 있음을 적지 않아 아쉽다.
육군 박물관과 동아대학교 박물관 유물에서 볼 수있는 군복용은, 튼튼한 가죽 재질에 단순한 띠 형태의 자수가 들어가 있다.


반면 일반용은 비단등의 천 바탕에 화려한 문양의 자수를 놓았다.



- 필자의 자작 완대 제작기 -

서울 소재 사전자수박물관에서 특별전시 행사 중에 자수완대가 있었음을 알았고, 여러종류의 자수완대 이미지를 볼 수 있었다.
투박한 형상의 육군박물관 소장 군복용 완대와는 달리 화려한 완대 유물에 매료되었었다.
이후 전시품을 보고서 재현을 시도했던 모 자수공예가에게 주문제작 구입을 문의하였지만,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직접 재봉틀을 사용하여 흉내라도 낸 자작완대를 만들어 쓰기에 이르렀다.


조악한 형태이나마 개량 한복 혹은 폭넓은 셔츠등을 입고서 활을 낼 때 유용했다.

몇년 후, 전통에 대한 열정을 가진 몇몇 한량들의 열망과 자금 지원 덕에 기계자수 패치를 사용한 완대제작을 시도하게 되었다.

기계자수 분야는 공산품의 분야에 속하다보니, 몇 십개의 자수 패치 출력은 개당 단가도 비싼데다가, 제작 공정상 업체의 배려가 없으면 시작 자체가 힘이드는 일이었다.
거기다 나머지 공정은 손이 많이가고 일일이 손바느질이 필요하니 반공산품/반수공품이 되었다.


기계자수 패치 앞면, 중간에 팔뚝의 굴곡 형태를 잡아주는 완충재, 뒷면엔 착용후 미끄러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재질의 스웨이드 천을 덧댄 후 비단실로 손바느질하여 완성한다.

조선의 궁술에서 지적하던 불편함은 현대에 널리 쓰이는 고무줄 끈과 스토퍼가 해결해 주었다.
혼자서도 패용하기 쉽고 흘러내리지 않으며 적당한 장력으로 고정되도록 하였다.


나름 다양한 바탕 소재위에 조금씩 다르게 제작하여 극소수의 전통 애호 한량들에게 공급할 수 있었다.

금번에는 업그레이드 및 신모델을 만들어 좀 더 저렴하게, 좀 더 많은 한량들이 써 볼 수 있도록 하기로 하였다.



- 지키기도 어렵지만, 되살리는 것은 더 어렵다-

전통을 계승, 발전 지키는 것도 어려운 현실에, 사라진 것을 되살리는 일이 무모한 일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더욱이 안쓰던 물건을 다시 쓰려다 보면 처음엔 조금 불편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자수완대의 부활이 무모한 일이 아니며, 미미한 불편함을 감수할 가치가 충분한 자랑스런 우리 활쏘기 유산임을 확신한다.

수많은 우리네 전통공예 유산이 사라졌고,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수요가 보장된 수공예품은 저가/저급의 공산품 혹은 수입품으로나마 존재하지만,
수요가 적은 우리만의 민속 공예품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동개와 군용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완대 역시 우선 내가 가장 필요로 했고 어디가에 꼭 필요로하는 곳이 있을 것이기에 묵묵히 내 할 도리를 하기로 한다.

끝으로 우리 전통활쏘기의 최고 사치품이던 자수완대의 르네상스 시대를 기대해 본다.


동개방에 동개가 없다-통영삼도수군통제영 12공방 by 마루치

그동안 통영을 방문할 때 마다 그저 스쳐 지나치기만 하던 삼도수군통제영을 오늘은 따로 시간을 내 다녀왔다.



소목장 추용호 선생님과 두석장 김극천 선생님도 만나보았다.






13회 김해공예품대전 출품('17. 04. 04) by 마루치

제목 : [태조대왕 칠피 어궁구 일습]
입선 수상







동아대 석당박물관의 국보급 동개 by 마루치

화혜장 안해표 선생님을 뵈러 갔다가 존재를 알게 된 동아대학교 석당 박물관의 동개들이다.

두 셋트의 동개와, 멧돼지 가죽으로 판단되는 시복 하나.





멧돼지 가죽으로 보이고, 장석은 쇠로 만들었고, 조이질을 한듯한데 부식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

편전 통아용 보조부분이 떨어져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의전용 초소형 시복, 미주리대학교에 있는 그레이슨 박사 컬렉션의 그 동개시복과 같이 만들어 진 동개시복이다.

옻칠한 소가죽 바탕에, 비철금속에 옻칠하여 굽는 금태칠기 기법과 ,파도문양은 조이질과 함께 금부 기법등으로 치장하였다.


동개궁대, 해군사관학교의 그것과 동일하되 금단장만이 다르다.
같은곳에서 같은 시대에 만들었으되 고급협으로 만들었다는 차이로 생각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있는 것과 같은 동개인데, 상태가 상당히 양호하다.
조각을 한건지 타출(채이싱) 기법을 적용한것인지 그 분야 전문가의 실견이 필요하지만 대단히 아름다운 장석이 국보급이다.
장석의 재료가 금인지 황동인지도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내부를 자세히 관찰하였더니 놀라운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리 혹은 밀의 줄기로 보이는 것들이 보였다.
소나무잎을 쓴 청나라 시복과 달리 우리네 실전용 화살집엔 스트로우 형태의 보리/밀 줄기를 완충제로 사용한듯하다.

46cm 남짓, 생각 보다 크지 않다.

띠돈이 생각보다 작다.

석류를 형상화 한듯하다.

 
최근에 만들어 본 태조이성계 궁대와 각각 비교해 보니 차이가 많이 난다.
조선 후기의 동개 궁대는 경량화의 산물이다.

시복 역시 내가 만든 것과 비교해 보았다.


유물 실견에 협조해주신 담당 학예사와 박물관장님에게 국보신청을 건의했고, 추진의 의사를 확인하였다.

활을 최고의 무기로 숭상하던 나라에거 활관련 국보하나 없다는게 늘 아쉬웠는데,
금번 화려한 동개 유물의 발견을 통해 대한민국 국보지정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육사박물관 두번째 방문('16. 12. 07) by 마루치

오랫동안 고대하던 윤동신공의 각궁을 보러 갔다.
부정주차한 차 때문에 예약했던 새벽발 KTX를 놓쳐 새마을 호를 타고가는 해프닝이 있었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였지만, 김기훈 교수님을 만나 화랑정도 들러보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수 있었고
김성혜 부관장님의 배려 덕분에 나비문 동개일습과 활장갑 및 가죽깍지, 호미각궁과 특이한 궁현의 각궁을 볼 수 있었다.


칼고자 마루활과 고자 부분을 비교해 보았다.

사슴가죽일듯한 부드러운 가죽으로 감쌋다.  

두꺼운 가죽으로 보이는 동고자가 특이하다.



 







제3회 흑의장군배 실전활쏘기 대회(연천 전곡선사박물관 161106) by 마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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